무엇을 보십니까?(예레미야 1:11)
2021.01.20 151 관리자
새로운 달인 4월을 맞이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고난당하시고 삼 일만에 부활하셔서 절망을 소망으로,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셨습니다. 4월 한 달이 부활의 주님과 함께하는 소망과 기쁨의 시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네가 무엇을 보느냐?”(11절)는 이 질문은 오래전 하나님께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물으신 말씀이지만 오늘 우리들 각자에게 물으시는 말씀으로 알고, 나는 무엇이라고 하나님께 대답할 것인가에 대하여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물으심에 대하여 예레미야는 “내가 살구나무 가지를 보나이다.”(11절)라고 대답하고 있습니다. 이 살구나무 가지를 보게 하신 것은, 예레미야가 절망하지 않고 소망 중에 사명 감당할 수 있도록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있었습니다. 그러하기에 이 살구나무 가지에는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와 함께 하시겠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살구나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솨게드’는 ‘깨어있다’ 또는 ‘지키다’는 뜻이 있습니다. 팔레스타인에서는, 다른 나무들이 모두 시들어 그 생명력을 상실한 것처럼 보이는 한겨울에도 홀로 깨어 꽃을 피우며 봄을 예고해 주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 살구나무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살구나무 가지를 보여 주신 것은, 어떤 위험과 재난 가운데서도 예레미야를 보호하실 것이라는 의지를 강하게 드러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과 신앙 공동체를 세우실 때에는 그 사람과 신앙 공동체를 끝까지 인도하시고 보호하시겠다는 약속까지 이미 보장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현재와 미래의 삶에 절망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예레미야가 처해 있는 사회적 상황도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지키는 자’, ‘깨어 있는 자’를 본다고 했습니다. 지금까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역사, 하나님의 도우심, 하나님의 위로를 바라보았다는 말씀입니다.
막달라 마리아도 새벽 미명에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가서 슬피 울었다고 했습니다(요한복음 20:15). 그렇습니다. 깊고 오묘한 하나님의 섭리를 바라보지 못하고 단지 눈앞에 전개된 사건의 현실만 바라볼 때 실망과 낙담의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빈 무덤과 예수님의 십자가상에서의 비참한 죽음, 이런 것만을 보았지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역사를 바라보지 못했기 때문에 슬피 울고 있었던 것입니다. 육안과 지안을 뛰어넘어 밝은 면을 볼 수 있는 영적인 눈을 가진 사람은, 절망의 환경을 절감하면서도 희망을 찾아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불안한 현실을 의미 있는 시간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에 거기에 전진이 있고 회복이 있는 것입니다.
어느 기독교 시인의 ‘마음속에 있는 해답’이라는 산문시 가운데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불만이 싸여 얼굴이 어둡다면 그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작은 문제입니다. 이 문제의 해답은 내 마음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에 감사라는 단어를 살며시 넣어보면 금세 내 얼굴은 밝아 질 테니까요.”
코로나 19로 인하여 지치고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상황 속에서도 계명대학교 동산의료원의 모든 교직원들은 예레미야가 보았던 ‘지키는 자’, ‘깨어 있는 자’와 함께 사명을 감당합니다. 4월 한 달도 코로나 19 현장에서 수고하는 모든 의료진들과 도움의 손길들을 주님께서 지켜주시기를 기도하며 “네가 무엇을 보느냐”라는 질문과 ‘내가 살구나무 가지를 보나이다.“라는 답변 속에서 하나님의 위로와 인도하심을 깨닫고 나아가는 믿음의 시간들이 되기를 소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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