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누구도 “나는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다” 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인간의 두려움은 두 가지로 나타납니다. 하나는 자신의 삶에 미래가 보장되지 못한 불확실성에서 오는 두려움입니다. 내가 맡은 일에 대한 두려움, 선택의 두려움, 건강에 대한 두려움이 있겠고 가장 궁극적인 두려움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또 하나는 피조물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에 대한 경외감입니다. 이러한 경외감을 가질 때 오히려 이 세상에서 경험하는 모든 두려움에 대한 해독제를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에 살면서 이 두 가지 중에서 한 가지를 선택해야 합니다. 매일매일 반복해서 부딪혀오는 두려움에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할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그분이 주시는 무한한 사랑과 능력을 가지고 세상에서 부딪히는 두려움에 승리하고 평안을 누릴 것인지 말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당신의 아들을 포기하면서까지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당신의 자녀로 만드신 하나님 안에 있다고 한다면, 우리가 매일 당면하는 두려움의 문제를 해결해낼 능력을 덧입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말씀은 제자들이 탄 배가 갈릴리 바다 한복판에서 풍랑을 만난 사건입니다. 물이 들어오고 배가 부서질 지경에 예수님을 보았지만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이 먼저 배에 올랐고 제자들이 그 뒤를 따른 후에 무서운 광풍이 일어납니다. 주님을 믿는다고 따라갔는데 위기와 어려움이 생기는 것을 목격합니다. 이럴때 어떤 생각이 듭니까? “도대체 살아 계신 주님입니까?” “이 많은 사람 중에 왜 저에게 이런 고난과 질병을 주십니까?”
성경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고난과 두려움이 없다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땅에서 두려움을 지니고 사는 존재라는 것을 실존적으로 느끼게 됩니다.
그러면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믿음의 사람들은 두려움에 도전하여 그 두려움을 넘어서는 용기를 갖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주무시는 예수님을 깨우고 두려움의 해결을 주님께 맡기게 됩니다. 그래서 그 두려움을 넘어서게 됩니다.
미국이 대공항의 위기에 놓여있었던 1933년 루즈벨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지금까지 인내해 온 것처럼 인내할 것이며 다시 살아나 번영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확고한 믿음을 가집니다. 우리가 가장 두려워해야 할 것은 바로 두려움 그 자체입니다.” 막연하고 이유 없으며 정당하지 않는 두려움이야말로 앞으로 나아가려는 노력을 마비시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두려움을 넘어서라! 왜 무서워하느냐! 믿음과 용기를 가져라!”(26절). 그리고 곧 일어나 바람과 바다를 꾸짖어 주시니 잔잔하게 되었습니다.
2월을 시작하는 동산의료원 교직원들과 환우들 가운데 두려움을 넘어서는 용기를 가지고 나아가 기쁨과 회복의 소식이 전달되어지기를 소망해 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힘이 비전이라면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힘은 사랑입니다.”
오정윤 책임원목 / 원목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