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지기의 파생어인 청지기직의 신학적 의미는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직분에 자신의 몸과 재능, 물질, 시간을 바쳐서 충성하는 일꾼입니다.
2016년 12월, 성탄절의 기쁨을 함께 나누며 한 해를 마무리하는 청지기직을 맡은 우리들 가운데 주님의 사랑이 가득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본문말씀에서 강줄기의 근원이요 나무의 뿌리와도 같은 진짜 사랑을 말씀하면서“하나님은 사랑이시라”(요일 4:8)고 하였습니다. 인간을 사랑하시어 독생자까지 보내주신 하나님의 사랑에서만이 참 사랑을 논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의 사랑만이 진짜 사랑이 될 수 있겠습니까?
첫째, 하나님의 사랑은 철저한 인간 사랑입니다. 우리 현실을 보면 서로를 사랑하는 사랑의 척도가 이기적으로 바뀌어가고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하는 상대를 보기 보다는 그가 가지고 있는 것에 우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경제적·지적 차이, 또는 사회적 신분이나 능력의 차이에 관계없이 인종을 초월하여 인간을 철저히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 당시, 나병환자는 가정과 마을에서 쫓겨나 살아야 했습니다. 사랑하는 부모, 자녀 그리고 형제도 외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에게 손을 대신 것입니다. 깊은 사랑에서 우러난 고백 같은 행위였고 예수님을 통해 보이신 하나님 사랑의 한 단면인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사랑은 그 깊이와 높이, 넓이를 헤아릴 수 없습니다. 재산을 다 탕진하고 형편없는 거지가 되어 돌아온 아들을 그대로 받아주는 아버지의 사랑,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눅 23:34)라고 십자가상에서 기도하신 예수님의 사랑은 하나님 사랑의 깊이와 높이, 넓이를 보여줍니다. 이사야 49장 15절에“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하시는 말씀에서 우리는 하나님 사랑의 심오함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게 됩니다.
셋째,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밖에 없는 자식을 주시기까지 한 사랑입니다. 사람들은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보석을 줍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유일한 존재인 독생자 예수님을 우리를 위해 보내주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 요한일서 4장 10절에“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
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말씀합니다.
쓴 약을 쉽게 먹게 하기 위해 겉에다 설탕을 입혀 먹기 쉽게 만든 약을 당의정이라고 합니다. 우리 주변에 이런 당의정식 사랑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그렇지 않습니다. 철저한 인간사랑, 높이와 깊이와 넓이를 헤아릴 수 없는 사랑, 유일한 독생자를 보내주신 사랑.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요 진짜 사랑입니다. 우리 믿음의 선진들은 이 사랑 때
문에 마음이 뛰었고 열정을 가졌으며 그 사랑을 전하며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2016년 마지막 한 달의 시간을 이 사랑으로 채우시는 계명대학교 동산의료원의 청지기들
과 환우 및 가족들이 되시기를 바라며 사랑과 평화의 왕으로 우리 가운데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뻐하며 2017년을 이 사랑으로 힘 있게 시작하시기를 소망하며 기도합니다.
오정윤 책임원목 / 원목실